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어깨를 계속 들어올리던 둘째아이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12월에 왔으니까 초등4학년을 거의 마치었는데..

밴쿠버에 오니 4학년을 다시 다니게 되었다.

 

밴쿠버는 교육청마다 각기 독립적인 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우리가 정착한 리치몬드시는 아이의 생년에 따라 학년이 자동으로 결정되었다. 한국에서는 1월생이라서 그 이전 해의 학생들과 같은 학년이었는데 다시 4학년으로 편성된 것이다.

 

물론 이곳은 학기가 9월부터 시작하니 1월부터 학교를 다니니 전학년을  전부 다 다시 다니는 것은 아니였지만 뭔가 1학년을 더 다니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규정이 약간 너그러운 다른 교육청에서 이민부모들이 영어때문에 가능한 한학년씩 낮추어서 등록을 요청하는 것을 보아서는 오히려 잘된 것일수도 있었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밴쿠버를 말할때는 보통 광역밴쿠버(Greater Vancouver)를 말한다.

밴쿠버(Vancouver) 와 버나비Bunaby, 리치몬드Richmond, 뉴 웨스트민스터New Westminster, 델타Delta, 써리Surrey, 노스 밴쿠버North Vancouver 및 웨스트 밴쿠버West Vancouver가 광역 밴쿠버를 형성하는 도시들이다.

 

몇년이 지난 후 학년에 너무 강박관념을 가진다는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6-3-3-4 (초등-중등-고등-대학)이 되어야지 이것이 아닌 경우 재수생이라는 부정적이미지를 갖고 있던 나는 서서히 세월이 흐르며 이러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고... 어느새 많은 한국의 지인들에게 이러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리라고 조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에서도 성격이 꽤나 쾌활했던 둘째 아이.

 

드디어 학교에 들어갔는데...

계속 애 엄마와 내가 말만하면 어깨를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학교 친구들이 영어로 계속 이야기해대는데 도무지 뭔말인지 모르니까 무시하지는 못하고 계속 어꺠를 들썩거리게 된 것이다.

 

부모로서 마음이 꽤나 아팠다.

 

종종 당시 얼마나 본인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정말 좋으신 Miss Ford라는 ESL선생님은 아이의 이런 과정을 재미있게 극복하도록 도와주셨다.

아이의 입장에서 기를 팍팍살려주시면서 영어를 가르치기 보다는 함께 놀아주시고 격려하신 선생님.

온 교직원 사무실, 학교 교정을 손수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에게 일일이 재미있게 설명하시던 선생님.

아이에겐 이 선생님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아 영어는 이렇게 배우는 거구나~.

 

한 3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어깨를 올리는 버릇이 사라지고 어느새 우리집엔 아이가 몰고온 캐나다 친구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4학년 꼬마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커서 지금은 토론토 대학 경제학과 3학년이다.

어제 그제 겨울방학인데 집에도 오지않고 교회에서 팀과 함께 토론토에서 아프리카로 단기선교를 떠난 둘째 아이..

 

밝게 자라준 이 아이가 나와 아내의 이민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있는것이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발런티어가 문화라고?

발런티어 Volunteer!

 

이민 와서 한국과 다른 것 중의 하나가 발런티어였다.

'자원봉사'란 말을 한국에서도 전혀 안쓴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뭔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던 그런 말이었다. 물론 지금은 한국도 많이 바뀌어 굉장히 친숙한 용어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어린이 자원 봉사대, 국토대장정 특별자원봉사대, 푸른 어머니회 자원봉사대 등 무언가 특별하고 거창한 의미로 사용했던 기억이다.

 

발런티어란 말이 여기서는 그냥 쉽게 학교에서 자원 봉사하고 커뮤니티센타에서 자원 봉사하고 등등.. 아주 자주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대학교 들어갈때는 물론 처음 취직을 할때도 아무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자원봉사했던 것을 이력에 쓰면 취직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발런티어란 곳곳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였다.

 

 

단결의 구호를 외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통일된 행동을 중요시하며 자랐던 나, 나름 한국에서 공공의 이익에 잘 훈련되었던 나는,

개인주의가 강한 이 서구사회가 어떻게 공공시스템은 요리도 잘 돌아갈수 있는가가 무척 궁금했다.

 

각 개인의 개성이 강한 이 사회, 이 사회에서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었일까. 교육제도일까?

 

나는 그 해답의 하나를 발런티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발런티어란 단순히 정의하면 '급여 등의 댓가를 받지 않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 사회 깊숙히 파고드는 것이 있었다.

 

다양한 발런티어를 통해 어릴때부터 자원봉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재미있게 배우고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 또는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잠시 유보하고 양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돈을 받기 전에 공공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체험으로 배우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까지도. 이렇게 발런티어는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소중한 문화가 된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발런티어 활동을 함께 보는 것은 이렇게 남을 위해 공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며 대학들은 이렇게 학문뿐 아니라 사회의 기반이 되는 발런티어 문화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밴쿠버의 캐나다 플레이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밴쿠버와 비

계속 비가 오다 드디어 오늘 몇주 만에 해가 났다.

 

11년전 이민 온 해 이처럼 비가 많이 왔다.

거의 1달 아니 2달 동안 연일 비가 내렸었던가?  

그것도 시원하게 장마비처럼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랑비도 아니고..

조금씩 매일 오는 비. 항상 희끄므리한 하늘.

 

그때 주위에서 이민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밴쿠버에서 살려면 비를 좋아해야 한다'나

 

그 이후 11월이 되고 겨울로 접어들면 항상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비와 친구가 되어야 할 준비를 해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 여러해동안 겨울에도 해가 나는 날이 제법 많아졌다.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요즈음은 밴쿠버 답지 않다'고,

그리고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세계적인 기상변화라는 설이 나돌았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 지난 몇 주간은 바로 그 때로 다시 돌아간것 같았다.

 

계속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제는 오히려 그 떄보다 더 마음이 심난하다.

아이들이 떠난 'Empty Nest'에서 아내와 둘만 있어서 그런가?

이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것 아닌가?

 

안되겠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외쳐야겠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 해에 밴구버 해변가에서 '밴쿠버와 비'라는 시를 적은 비석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 가서 그 내용을 꼭 적어와야겠다.

 

내가 사는 이곳 사랑해야하지 않겠나.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자신감 키우기

언제 이민 오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초등학교 고학년 부터는 캐나다의 교과과정 중에 수학은 아주 쉽고 영어가 가장 중요한 도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영어만 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한가지 내가 적용한 우회적인 교육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잘하는 것(과목)에 대한 집중적인 칭찬'

 

 

 대체로 한국과 캐나다의 수학이 2년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도 수학을 잘해 경시반에서 활동했으니 수학시간이 어떠할 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나는 이 점을 최대 활용했다. 아이에게 학교에서는 물론 캐나다에서 수학을 최고로 잘하도록 격려했다.  

아주 잘하는 것이 있어야 영어가 좀 딸려도 주눅이 들지 않을거라 생각한 것이다.

 

수학선생님은 참 재미 있으신 분이셨다. 수업 시간에 가끔씩 칠판에 요상한 문제를 내 놓고는 큰 애와 누가 먼저 푸는가 내기를 했다고 하니 아이의 자신감이 얼마나 생겼겠는가, 아마 그 이후로도 아이는 수학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선생님의 영향도 컸을 것 같다.

큰 아이는 결국 학교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되었고 이는 영어시간으로도 연결이되었다.

 

영어수업시간에 자신있게 아는 것을 잘 발표함으로써 캐나다 온지 1년도 채 안된 8학년 초, 아직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을 수강중인 학생이 영어선생님이 지도하는 'Reach the Top'이라는 학교간의 퀴즈경진대회의 학교대표팀으로 발탁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로써 걱정하던 영어에의 도전은 의외로 수월하게 그 첫 관문(정상적인 영어수업)을 통과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못하는 것을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자꾸 지적하기 보다는 잘 하는 것을 칭찬하여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국에서나 여기에서나 좋은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래 사진: 버나비 타운센타 분수대 앞

 

돌고래가 밖으로 나올 때 꽤나 자신이 있어 보인다. 옆의 친구가 있어서 그런가요 ^^

(사진은 동상입니다. 자신있는 분의 생각과 손끝이 느껴집니다. )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영어 정복 시작

 

초창기에 아직도 아버지로서 잘 한 것을 하나 꼽는다면 챕터스(캐나다의 대형책방) 나들이와 영어책을 제일 먼저 사준 일이었다.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온가족이 캐나다의 대형 서점 체인인 챕터스를 을 구경했다.

 

실내가 아주 넓고 쾌적하였고 곳곳에 자그마한 의자도 있고 마치 쉼터같은 분위기였다. (나중에 스타벅스가 책방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아무튼.. 온통 영어로 씌여진 책들만이 가득한 큰 매장을 이것 저것 둘러보던  나는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주눅이 들기도 했다.

아내의 모습을 힐끗 보니 쇼핑하는 모습이 사뭇 경건(?)하다.

두 아이는 그저 천방지축 다니고 있는 것 같고.

 

상념들을 떨쳐버리자. 집중하자. 결국 영어공부 코너에서 발길을 고정한 나는 진열대에 꽂혀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빼서 그 내용을 살펴 보았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좋아보이는 영어문법책을 한세트(웍크북 포함)를 샀다.

 

집에 와서 큰 아이를 불러 앉혀 놓고는, 이제 겨우 6학년을 마친(한국에서) 아이에게 아버지의 공부에 대한 첫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이제껏 공부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너에게 처음으로 공부이야기를 한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샅샅이 보아야한다. 워크북 연습문제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해야한다."

 

큰 아이는 그 후 3개월 동안 학교를 마친 후 저녁에 이 영어책을 꼼꼼이 다 보았는데 이것이 나중에 영어를 자신있게 잘 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일상회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잘 되지만 글쓰기는 문법이 튼튼해야 자신감있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영어 정복의 도전은 이렇게 몇십불의 책값 투자로 그런대로 쉽게 적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사준 책입니다.

Fundamentals of ENGLISH GRAMMER

by Betty Schrampfer Azar  

Fundamentals of English Grammer, With Answer Key

Fundamentals of English Grammer, With Answer Key

No Synopsis Available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스쿨보드 주차장에서

새로운 곳에서 아이들이 잘 교육받고  잘 성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은 이민 온 많은 부모세대들이 낮선 땅에서 자신들의 고달픈 삶을 달랠 수 있는 중요한 바램이다.  

 

아이들의 학교등록은 이 바램을 실현하는 시작인 것이었다.

 

학교를 등록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가야하는 곳이 스쿨보드(교육청)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레는 마음 반, 긴장된 마음 반으로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리치몬드시 스쿨보드를 찾아갔다. 한 가족의 가장이요 당시 영어를 제일 잘하는 내가 앞장서서 헤매지 않고 일을 잘 처리하여 아이들과 아내에게 품위를 유지해야 했다.

 

스쿨보드 주차장을 찾아서 차를 주차하고 나서..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찾고 있었다. . 그런데 모든 사인이 영어로 되어 있어서인지 긴장해서인지 왼걸.. 쉽게 내가 가야할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는 나를 향하여 (우리 가족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키도 크고, 코도 크고, 눈도 크고 파란 한 신사 양반이 나를 향해 손 짓을 하고 있었다. 영어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쯤은 눈치로 대번 알수 있었다. 그를 따라 우리 가족은 등록을 하는 2층으로 올라갔고, 그 신사는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땡큐 배리 머치'를 그의 등 뒤에 대고 방백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 등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왠지 기분이 좋았다.

 

몇개월 후, 큰 아이가 수학을 아주 잘해서 시에서 상장을 준다고 하여 교육청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주차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 신사양반이 바로 리치몬드시 교육청장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교육청장인 크리스 켈리는 몇년 후 밴쿠버시 교육청장이 되고 다른 모임에서 이 분을 또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기로..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영어 빵점

요즈음도 둘째 딸아이(대학 3년)와 이야기를 나누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초등 4년을 마칠 무렵 캐나다에 온 딸 아이. 이제는 아빠보다 아니 캐나다인 보다도 영어를 더 잘하는 딸에게 제가 불리할 때 자주 놀리는 말입니다.

 

"아무튼 너....... 캐나다 오기전에 한국에서 영어 공부하러 가서 처음 본 시험에서 빵점 맞았잖아!

어떻게 빵점을.. 넌 우리 집안에는 그런 예가 없는 대 기록을 세운거야."

 

엄마가 사준 파닉스 테잎을 뒹굴 뒹글하며 몇번 듣고 난 뒤였지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어머니가 지도하는 영어 그룹 수업에 가게되었고 처음 치렀던 시험이 바로 영어 단어의 스펠링을 쓰는 이른 바 '영어단어받아쓰기' 시험이었지요.

딸아이는 자기가 테이프에서 듣던(들리던) 대로 꼬부랑 글씨로 적었고(그렸고) 그 것이 빵점을 맞게된 것이지요.

 

밖으로만 열심히 돌아다니는 남편에게 아이들의 교육을 기대할 수 없었던 아내, 영어교육 전문가가 전혀 아니었던 아이 엄마의 지도방식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이민온 지 몇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김치 눈치

 

내가 이민 온 해는 98년 말이었다.

 

97년 밀어닥친 일명 IMF라고 하는 경제적 괴물로 인해 온 나라가 한창 떠들석하고 기업들은 부도가 나고 서로 앞다투어 감원하기에 바쁜 아주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당시 기업의 차장으로서 일하고 있던 나는 한 기업에서 30년-40년 자기 가족보다 회사를 더 사랑했던 많은 분들이 하루 자고 나면 잘려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사실 이것이 내가 이민을 오게된 동기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98년 11월 21일,

나는 아내와 아이들보다 3주 먼저 와서 호텔에 묵으며 나보다 6개월 먼저오신 김선배하고 돌아다니며 살 집도 구하고 학교도 가보고 여기저기를 미리 대강대강 둘러보았다.

 

3주후 드디어 아내와 아이들이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바로 내가 묶고 있었던 호텔에 왔다. 아직 계약한 집에 들어가려면 3일 정도는 호텔에 더 있어야했다.

 

오랜만에 아빠를 보고 반가워하는 아이들과 함께 호텔에서 아내가 가져온 가방을 푸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뿔사, 아이들 고모가 진공포장하여 싸준 김치가 비행기에서 터졌던 것이다!

 

아까와서 버릴수도 없고... 할수 없이  아내는 다른 플라스틱 통에 잘 집어넣어 냉장고에 넣어두었고 3일간을 잘 먹었는데...밖에 나갔다가 호텔방에만 들어오면 김치 냄새가 온 방에 가득했다. 호텔 청소하는 사람이 무척 싫어할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이래다 쫒겨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텔첵크아웃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슨 말을 들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결국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휴우~

 

이렇게 시작된 캐나다 생활, 바로 김치 냄새에 신경써야하는 외국생활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가장의 어깨를 무겁게 했던 그 김치 눈치를 생각하면 아직도 10년 전의 긴장된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블로그를 시작하며

 

아내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이전에는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땅, 캐나다의 밴쿠버에 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지인들에게 자신있게 이민을 권유하던 나의 지난날들..

이제는 찬찬히 무엇이 옳은 가를 따져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이민을 꿈꾸는 분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다.

 

정감있는 이야기와 유용한 정보가 함께 어우러지는.

 

우선 긴 여정을 출발하기 전에 기지개을 힘껏 펴보자.

기~  지~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