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4일 목요일

사랑하면 놓아라

 

우리는 대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가까이 두려고 한다.

산이나 들에 다니면서 아름다운 꽃이나 신기한 식물을 보면

좋다!’ 하고는 바로 다음엔

요걸 집에 가져다 놓아야지
.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으면 병에 걸린다
.
이른바 상사병이다
.

이제 우리네 자식들이 우리들이 모르게 먹은 나이처럼

어느새 훌쩍 자라있다
.

하동아재 아들은 벌써 장가까지 갔다
.

그런데 장가를 오지 않고 갔다고 한다
.
온게 아니고 간거다
.
신기한 것은 아들이 가니까 집안에 딸이(며느리) 들어왔다
.

가니까 온거다
.

번도 직접 낚시를 적이 없지만… (언젠가 이런 여유로운 날이 오겠지
)
고기를 낚으려면 강에 가서 바다에 가서 던져야 한다
.
그래야 싱싱한 회와 매운탕을 즐긴다
.

가지 않고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를 먹는다고 상상해보라
.
별로일거다
.

요즘 주위에 중고생아이를 부모들이 걱정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
아이들과 많이 싸운다
.
여러가지 사연으로
.
나도 그랬다
.

이럴때 쓰는 좋은 처방이 있다
.


아이를 가게 하는 것이다.
자꾸만 나에게 다가 오게 하지 말고

나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

떨어져서 세상을 보게 하는 것이다
.

가까이 있게 하면 할수록

아이에겐 세상은 보이지 않고

대신
부모의 결점이 보인다
.
그것도 마치 확대경으로 보듯이 아주 보인다
.
굉장한 부모에게선
아이는 모종의 위압감마저 느낀다
.
.
.
사랑한다고 잡는 손인데

사랑해서 하는 말인데
장래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 역주행을 해서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남긴다
.
.
.
보내라

당장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아이에겐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

당신의 손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을

얼마든지 터치할 있는 기적의 손이다
.

당신의 발은 비록 굳은 살이 배겨 돌덩이 같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을 세상을 보게한 위대한 넓은 발이다
.

저편에서

아이는

바로 당신의 사랑의 발을 씻겨주고자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며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눈물훔치며
삶의 위대한 용기를 얻는다.

 

* * *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SAT 유감

 

최근의 한국언론의 SAT 문제유출 보도를 보면서 이민자로서 깊은 유감을 느낀다.
 
이민생활이란  한편으론 고국을 등지고 왔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
시간이 지날수록 고국에 대한 향수는 더해가고  고국에 대한 기대감 또한 더해가는데...

한국이 세계적으로 제일 우수한 것이 나오면 기분이 좋고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
 
세계 전자기기 시장에서 깰수없을 것 같았던 일본회사를 당당히 누르고 우뚝선 삼성, 최근의 원자로 수출 소식, 김연아, 최경주, 양용은 ... 이러한 한국의 약진은 이민자녀들에게 당당히 한국말을 잘해야 국제 사회에서 그들의 무대가 더 넓어진다고 자연스럽게 강조할수 있게 된다.

SAT 유감 

미국의 SAT은 대학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에게 어떤 레벨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대학위원회(College Board)가 문제를 만들어 내며 그 시험의 주관을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s)에서 하고있는 것이다.
 
SAT Reasoning Test 라고 하며, Scholastic Aptitude Test란 그 용어에서 볼수 있듯이 학구적인 능력,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인것이다.
 
The College Board claims that the test can determine whether or not a person is ready for college.
‘대학위원회는 이시험은 대학을 위해 학생이 준비되었나 안되었나를 결정할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국내(미국)학생들도 이처럼 대학공부의 준비가 중요한데 원어민이 아닌 유학생들의 외국에서의 공부가 절대로 쉽지는 않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들어가서 수학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공부가 어렵다는 것은 어떤 단편적인 언어능력 하나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의 학습능력에 대한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이없는 짓을 저질러  국제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학원 강사가 비난의 대상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식에 대한 지나친 학부모의 욕심을 경계해야하는 것이다.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자녀에게 기대하는 선한 마음과 지나친 욕심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준비가 안된 학생에게 억지로 문제를 유출해 시험점수 올리기를 하는 것은 준비 안된 자녀를 자기 능력이상의 학교에 억지로 집어 넣은 것과 다르지 않다. 어린아이를 사다리에 올리는 부모는 어리석은 것 아닌가.
 
 
캐나다나 미국 대학에서 준비안된 학생이 학업적으로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자신의 준비된 실력에 적합하고 개인의 특성에 따라 학교를 잘 선별해서 들어가서 한국인의 특성인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더 큰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북미대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제는 더욱 성실한 자세로 해외교육을 바라보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진정한 글로벌인재를 키워내는 자랑스런 한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포트무디 라이브러리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IB프로그램과의 만남(II)

너무 지체되었네요^^

 

이렇게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IB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학교들도 둘러보게 되었고

마침내 밴쿠버시의 윈스톤처칠 세컨더리 스쿨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IB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방문한 날이 등록신청 마감일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등록신청을 했다.

 

지금도 가끔 그 때를 회상하면  '우리가 과연 살면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본다.

 

 

저녁에 IB Information Night에 참가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들을수 있었다.

 

 

IB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면..

 

IB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이며 2년의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Diploma를 취득하게 된다. 고등학교 과정이지만 일반 과정보다는 상당히 심화학습을 한다고 보면 된다. 6개의 학습영역(그룹)을 골고루 공부하게하고 아래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3가지의 특별영역을 같이 수행한다.

 

즉, 언어 영역, 개인과 사회 영역, 수학과 컴퓨터과학 영역, 예술 영역, 실험과학 영역, 제2외국어 영역의 6가지 영역을 고루 공부하게하고 가운데 코아영역으로 지식이론(TOK: Theory of Knowledge), 특별활동(TOK: 창의성, 행동, 서비스), 확장 에세이(Extended Essay)가 그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다.  

 

The IB Hexagon

 

 

 

이렇게 여러영역으로 균형이 잡힌 커리큘럼과,  난이도가 상당히 높고, 평가제도가 국제적으로 표준관리되는 프로그램이라서 IVY 리그 대학 등 미국의 유명대학 입학전형에서 인정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만만치 않아 대개는 IB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에서는 10학년에는 Pre-IB를 운영한다. 큰 아이가 10학년부터 이프로그램을 만나게 된 것이 정말 커다란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절감하게 된다. 결국 나는 이민 부모로서 IB의 팬이되었고 둘째아이도 이프로그램을 이수하게 된다.

 

지난 이민 10여년 중 큰아이 3년, 작은아이 3년, 도합 무려 6년을 이 프로그램과 연을 맺었으니....

이후 자연스럽게 IB프로그램을 지인들에게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적극적으로 권하게 되었다.

 

 

IB 프로그램의 세부 내역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좀더 소개하고, 얽힌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하고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2010년 1월 9일 토요일

IB 프로그램과의 만남(1)

IB프로그램을 만난 것은 이민와서 아이들 교육때문에 고만하던 나와 아내에게는 큰 분수령이 된것 같다.

 

제한된 언어능력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지 못하게 된 아내, 나역시 직장에 매여 한국에서처럼 별로 아이들의 프로그램에 관해 시간을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을 찾는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8학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잘 마친 큰 아이를 보면서 이나라의 교육시스템에 아주 잘 적응한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9학년이 되면서 더욱 더 열심히 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아뿔싸, 반대로 다른 아이들과 컴퓨터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이 자꾸 늘어가는 것이 아닌가.

밤새도록 여럿이 참여하는 스타크래프트인가 뭔가하는 게임을 밤늦도록 하고는 충혈된 눈으로 일어나고..

 

컴퓨더 정보통신 분야에 일하는 나는 컴퓨터게임의 끼치는 나쁜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또한 가끔 집에서도 회사일을 연장하여 사용하는 내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먹고 하는 등을 겪으면서 아이에게 자꾸 잔소리가 늘어갔다. 걱정과 함께.

 

학교공부가 너무 쉬운가? 아니면?

 

안되겠다.

환경을 바꾸어야겠다. 이사를 해야겠다.

마침 아직 집을 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걸리는 것도 없고..

 

아내와 나는 그레이터 밴쿠버 지역의 다른 지역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 두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세살 집을 보고 또 한편으로는 반드시 인근 지역의 학교를 일일이 방문해보았다.

 

아무튼 이때 다닌 것 때문에 그 이후로  아는 사람들 집찾는데, 어디 새로운 곳 찾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정도로... 많은 학교들을 다녔다.

 

 

(계속)

 

* 201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어깨를 계속 들어올리던 둘째아이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12월에 왔으니까 초등4학년을 거의 마치었는데..

밴쿠버에 오니 4학년을 다시 다니게 되었다.

 

밴쿠버는 교육청마다 각기 독립적인 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우리가 정착한 리치몬드시는 아이의 생년에 따라 학년이 자동으로 결정되었다. 한국에서는 1월생이라서 그 이전 해의 학생들과 같은 학년이었는데 다시 4학년으로 편성된 것이다.

 

물론 이곳은 학기가 9월부터 시작하니 1월부터 학교를 다니니 전학년을  전부 다 다시 다니는 것은 아니였지만 뭔가 1학년을 더 다니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규정이 약간 너그러운 다른 교육청에서 이민부모들이 영어때문에 가능한 한학년씩 낮추어서 등록을 요청하는 것을 보아서는 오히려 잘된 것일수도 있었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밴쿠버를 말할때는 보통 광역밴쿠버(Greater Vancouver)를 말한다.

밴쿠버(Vancouver) 와 버나비Bunaby, 리치몬드Richmond, 뉴 웨스트민스터New Westminster, 델타Delta, 써리Surrey, 노스 밴쿠버North Vancouver 및 웨스트 밴쿠버West Vancouver가 광역 밴쿠버를 형성하는 도시들이다.

 

몇년이 지난 후 학년에 너무 강박관념을 가진다는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6-3-3-4 (초등-중등-고등-대학)이 되어야지 이것이 아닌 경우 재수생이라는 부정적이미지를 갖고 있던 나는 서서히 세월이 흐르며 이러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고... 어느새 많은 한국의 지인들에게 이러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리라고 조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에서도 성격이 꽤나 쾌활했던 둘째 아이.

 

드디어 학교에 들어갔는데...

계속 애 엄마와 내가 말만하면 어깨를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학교 친구들이 영어로 계속 이야기해대는데 도무지 뭔말인지 모르니까 무시하지는 못하고 계속 어꺠를 들썩거리게 된 것이다.

 

부모로서 마음이 꽤나 아팠다.

 

종종 당시 얼마나 본인은 스트레스를 받았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정말 좋으신 Miss Ford라는 ESL선생님은 아이의 이런 과정을 재미있게 극복하도록 도와주셨다.

아이의 입장에서 기를 팍팍살려주시면서 영어를 가르치기 보다는 함께 놀아주시고 격려하신 선생님.

온 교직원 사무실, 학교 교정을 손수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에게 일일이 재미있게 설명하시던 선생님.

아이에겐 이 선생님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아 영어는 이렇게 배우는 거구나~.

 

한 3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어깨를 올리는 버릇이 사라지고 어느새 우리집엔 아이가 몰고온 캐나다 친구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4학년 꼬마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커서 지금은 토론토 대학 경제학과 3학년이다.

어제 그제 겨울방학인데 집에도 오지않고 교회에서 팀과 함께 토론토에서 아프리카로 단기선교를 떠난 둘째 아이..

 

밝게 자라준 이 아이가 나와 아내의 이민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있는것이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발런티어가 문화라고?

발런티어 Volunteer!

 

이민 와서 한국과 다른 것 중의 하나가 발런티어였다.

'자원봉사'란 말을 한국에서도 전혀 안쓴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뭔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던 그런 말이었다. 물론 지금은 한국도 많이 바뀌어 굉장히 친숙한 용어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어린이 자원 봉사대, 국토대장정 특별자원봉사대, 푸른 어머니회 자원봉사대 등 무언가 특별하고 거창한 의미로 사용했던 기억이다.

 

발런티어란 말이 여기서는 그냥 쉽게 학교에서 자원 봉사하고 커뮤니티센타에서 자원 봉사하고 등등.. 아주 자주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대학교 들어갈때는 물론 처음 취직을 할때도 아무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자원봉사했던 것을 이력에 쓰면 취직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발런티어란 곳곳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였다.

 

 

단결의 구호를 외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통일된 행동을 중요시하며 자랐던 나, 나름 한국에서 공공의 이익에 잘 훈련되었던 나는,

개인주의가 강한 이 서구사회가 어떻게 공공시스템은 요리도 잘 돌아갈수 있는가가 무척 궁금했다.

 

각 개인의 개성이 강한 이 사회, 이 사회에서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었일까. 교육제도일까?

 

나는 그 해답의 하나를 발런티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발런티어란 단순히 정의하면 '급여 등의 댓가를 받지 않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 사회 깊숙히 파고드는 것이 있었다.

 

다양한 발런티어를 통해 어릴때부터 자원봉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재미있게 배우고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 또는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잠시 유보하고 양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돈을 받기 전에 공공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체험으로 배우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까지도. 이렇게 발런티어는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소중한 문화가 된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발런티어 활동을 함께 보는 것은 이렇게 남을 위해 공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며 대학들은 이렇게 학문뿐 아니라 사회의 기반이 되는 발런티어 문화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밴쿠버의 캐나다 플레이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밴쿠버와 비

계속 비가 오다 드디어 오늘 몇주 만에 해가 났다.

 

11년전 이민 온 해 이처럼 비가 많이 왔다.

거의 1달 아니 2달 동안 연일 비가 내렸었던가?  

그것도 시원하게 장마비처럼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랑비도 아니고..

조금씩 매일 오는 비. 항상 희끄므리한 하늘.

 

그때 주위에서 이민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밴쿠버에서 살려면 비를 좋아해야 한다'나

 

그 이후 11월이 되고 겨울로 접어들면 항상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비와 친구가 되어야 할 준비를 해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 여러해동안 겨울에도 해가 나는 날이 제법 많아졌다.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요즈음은 밴쿠버 답지 않다'고,

그리고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세계적인 기상변화라는 설이 나돌았고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 지난 몇 주간은 바로 그 때로 다시 돌아간것 같았다.

 

계속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제는 오히려 그 떄보다 더 마음이 심난하다.

아이들이 떠난 'Empty Nest'에서 아내와 둘만 있어서 그런가?

이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것 아닌가?

 

안되겠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 외쳐야겠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 해에 밴구버 해변가에서 '밴쿠버와 비'라는 시를 적은 비석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 가서 그 내용을 꼭 적어와야겠다.

 

내가 사는 이곳 사랑해야하지 않겠나.